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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교회, 희망을 심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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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기원섭 작성일16-01-17 07:51 조회1,933회 댓글1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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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교회, 희망을 심는 나무
‘서울 천호대로 군자역에서 아차산역으로 향하는 고갯길 오른쪽에는 오래돼 보이는 빨간 벽돌 건물이 우뚝 서 있다. 교회 벽면에는 서울시민교회라고 크게 쓰여 있는데, 중후한 멋이 풍겨 나온다.’
지난해인 2015년 8월인가 해서, 기독교인터넷 신문인 ‘뉴스앤조이’에서 출간한 ‘이웃과 함께하는 도시교회 2’라는 책을 구입해서 본 적이 있는데, 그 책에 ‘빚진 자의 마음으로 지역의 필요를 채우는 교회’라는 제목으로, 내가 다니는 서울시민교회에 대한 소개의 글도 실려 있었다.
이은혜 기자가 취재해서 쓴 글이었는데, 위의 글은 바로 그 소개의 글 첫 대목이다.
계속해서 우리 교회의 연혁과 담임이신 권오헌 목사님의 이력, 장애인들과 청년들, 그리고 지역사회에 대한 우리 교회의 관심과 역할에 대해서 소상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내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본 대목이 있다.
바로 ‘한 번 돌본 장애인, 끝까지 책임진다.’라는 제목의 글로, 우리 서울시민교회가 장애인들에게 어떤 관심을 가지고 어떻게 어울려 가는 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8년째 장애인 부서 사역을 담당해 왔다는 김경호 목사님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는 것인데,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장애인들을 위해 우리 서울시민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고민한 끝에 ‘희망의 학교’를 세우게 되었다는 것이고,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돌본 발달 장애인들이 갈 곳이 없게 되었을 때, 결국에 책임져야 할 곳은 교회라는 것이며, 이들이 늙어 죽을 때까지 교회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었고, 사회가 이들을 돌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아직은 우리 사회가 그런 일을 다 감당하지 못하기에 교회가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서울시민교회에서 운영하게 된 것이 ‘희망을 심는 나무’이고 ‘희망 일터’라고 했다.
2012년에 세워진 ‘희망을 심는 나무’는 행정자치부 인증 마을 기업으로, 희망나무라는 인터넷 쇼핑몰을 열어 미니화분과 각종 화훼 제품을 팔고 있고, 여기서 파는 제품을 만드는 곳이 곧 ‘희망일터’라고 했다.
그 글을 읽어가면서 ‘나는 그동안 도대체 무엇을 했나?’라는 의문의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교회에 희망부가 처음 생길 그 즈음에 그 부서에서 손길을 보탰던 맏이 생각도 했다.
아들보다 못한 아비라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경제적 형편이 넉넉하면 물질적으로라도 보탤 수 있겠지만, 오랜 불경기의 여파는 내게 그럴 여력을 남겨놓지 않았다.
그래도 뭔가는 해야 했다.
그저 안타까운 마음만 품는 그런 심정적 보탬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하다는 생각이었다.
어떻게든 현실적 보탬을 강구해야 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희망 일터’에서 장애인들의 손길로 생산되는 ‘희망나무’를 사주는 것이었다.
법무사로서 이곳저곳 거래처가 있어, 그 거래처에 꽃이나 화분을 보낼 일이 간혹은 있기 때문이었다.
그 꽃이나 화분을 ‘희망을 심는 나무’에서 사주게 되면, 그 일터에도 도움이 되고 내게도 도움이 되겠다싶었다.
그러나 정작 실행으로 옮기는 것이 그리 쉽지를 않았다.
이미 10년 단골이 되어있는 꽃집과의 거래를 끊어야했기 때문이다.
그 꽃집도 그 주인이 말을 더듬는 장애가 있어 거래를 시작했고, 또 단골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교회 장애인들을 돕겠다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나눌 수도 없었다.
마음이 갈라져서는, 이 쪽 저 쪽 그 어느 쪽에도 큰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고심 또 고심 끝에 결국 결론을 냈다.
기존의 단골 꽃집에는 다른 거래처를 소개해주고, 나는 우리 교회의 ‘희망 일터’를 챙기면 되겠다싶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리 어렵지 않게 다른 거래처를 연결시켜줄 수 있었다.
그때가 지난해인 2015년 12월 말쯤이었다.
마침 내 주위에 인사이동으로 자리를 옮기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어차피 꽃다발이나 화분을 보내야 할 판이었다.
우리 교회 ‘희망 일터’를 맡고 계시는 박해옥 집사님에게 특별히 부탁을 해서 예쁜 화분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값도 반값이어서 한 곳 보낼 것으로 두 곳을 보낼 수가 있었다.
리본의 글귀는 내가 지어냈다.
내 딴에는 받는 사람이 기분 좋게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서 지어낸 것으로, 대충 이런 내용들이었다.
‘남산 너머 한강 너머 온 향기, 곧 당신의 향기였습니다.’
‘향기로운 자리매김을 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어디선가 향기가 솔솔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당신 것이었습니다.’
‘좋아요. 너무 좋아요.’
권위를 확 빼버린 파격의 문장으로, 내 마음을 대신했다.
곧 답이 왔다.
하나 안 빼놓고 다 왔다.
다들 고맙다고 했다.
너무 예쁜 화분을 보내서 그렇다고 했다.
그 중 하나는 아예 받은 화분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왔다.
그러면서도 다들 빼먹고 있는 것이 있었다.
리본의 글귀로 고맙다고 하지 않는 것이 그랬다.
댓글목록
안희국님의 댓글
안희국 작성일어려운 이웃에게 립서비스만 하는 신자는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하라, 가서 너도 이와같이 하라! 집사님 글을 읽노라니 이 말씀이 떠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