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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교회, 귀 좀 빌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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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기원섭 작성일18-10-16 16:32 조회1,361회 댓글2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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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교회, 귀 좀 빌릴게요.
권사님, 귀 좀 빌릴게요.
소곤소곤 고백 좀 하게요.
누가 들으면 쪽팔릴 일이어서 그러니, 아무도 못 듣게 귀 좀 더 가까이 대 보세요.
특히 우리 권 목사님이 들으시면 큰일 나요.
‘도대체 그래가지고 어찌 집사라고 할 수 있나요?’
그러시면서 저를 서울시민교회에서 쫓아낼 수도 있겠다 싶어요.
전에는 이 교회에서 쫓겨나면 저 교회 가면 될 것 아니냐하고 생각을 했었는데요, 언젠가 권 목사님 설교를 들어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안 쫓겨난 척 속임수를 쓰면 몰라도, 같은 교단에서는 아무 교회도 갈 수가 없더라고요.
말하자면 파문인 거지요.
일흔 나이에 가로 늦게 그렇게 파문될 수는 없잖아요.
그러면 안 털어놓으면 그만 아니냐고 하시겠지만, 양심에 쪽팔려서 그게 또 그렇지를 않더라고요.
더군다나 바로 엊그제 주일이었던 2018년 10월 21일 오전 9시 반부터 우리 교회 본당에서 있었던 2부 예배에서, ‘하나님 앞에서’라는 제목으로 하시는 권 목사님의 설교 말씀을 듣다보니, 적어도 마음 착하시고 입이 무거우신 우리 권사님에게는 털어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날 예배에서 권 목사님은 성경 신약 베드로전서 3장 1절로부터 22절까지의 구절을 바탕으로 해서 설교를 하셨어요.
다 아실 테니, 구절 전문은 생략할게요.
우리 교인들이 그 성경을 한 목소리로 봉독할 때, 저도 따라 봉독을 했었지요.
그 처음에는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라고 쓰인 1절의 구절만으로, 저는 오늘 권 목사님의 설교는 아내들에게 참 많은 깨우침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러나 ‘남편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쓰인 7절 구절에서부터 생각을 달리 고쳐먹어야 했어요.
이제는 남편에 대한 깨우침을 주는 구절이었기 때문이에요.
이어지는 8절 구절에는 제가 아내에 대해 어찌 처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이고도 확실한 지침이 담겨 있었어요.
이랬어요.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핵심은 불쌍히 여기는 것이었어요.
그런 마음이어야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인다는 것이었어요.
특히 이 구절에서 권 목사님은 불쌍히 여김을 특별히 강조하시면서, 이런 말씀까지 하셨어요.
“저는 교인들을 보면서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돈 못 쓰는 교인들을 보면 그렇고요, 방탕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교인들을 볼 때마다 그래요. 하나님 앞에 설 때가 되면, 그게 다 쓸데없는 것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그걸 미리 깨우치지 못하니, 그게 불쌍하다는 겁니다.”
말씀만 그리하셔도 저는 다 알아듣고 있었지요.
그런데 권 목사님께서 무슨 생각이 있어서 그러셨는지, 아니면 도둑놈 제 잘 저리다고 하듯이 제가 스스로 그리 느껴서인지는 몰라도, 권 목사님의 시선이 저를 향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 시선이 제게는 뜨겁게 느껴지더라고요.
꼭 저보고 하시는 말씀인 것 같았어요.
오금이 저릴 수밖에 없었지요.
제가 그렇게 권 목사님 설교를 들으며 오금이 저렸다는, 그 말을 전하려고 이 고백을 하는 것이 아니에요.
사실은 저를 부끄럽게 한, 또 다른 사연이 있었어요.
그 사연을 고백하려는 거예요.
권 목사님이 이날 설교 초입에서 ‘하나님 앞에서’라는 설교 제목에 대해 풀어 가시면서 그 말의 원전은 ‘코람데오’(Coram Deo)라는 라틴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셨어요.
너무나 귀한 말인데도, 저는 ‘코람데오’라는 그 말의 뜻도 모르고, 그저 입술에만 발라서 ‘코람데오’ ‘코람데오’ 해왔었거든요.
모르면서도 알 생각 없이, 그저 무심히 세월을 까먹었던 거지요.
‘집사’라는 직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귀한 말을 모르고 있는데다가, 아예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여태 교회를 다녔으니, 교회법 연구를 많이 하셨다는 권 목사님에게 안 혼나고 배기겠느냐는 거예요.
그래서 권사님께 소곤소곤 고백하게 된 거예요.
말 안 퍼뜨릴 것이라고, 제 믿으니까요.
그런데 참으로 희한한 일이 하나 생겼습니다.
하루 뒤인 15일 월요일로 바로 어제의 일이었어요.
온라인에서 저의 또 하나 글쓰기 공간인 페이스북에서 친구요청을 하는 이가 있었지요.
‘박선동’이라는 이름의 실명이었는데, ‘함께 하는 친구’라고 해서 6명의 이름이 확인되고 있더라고요.
누군가 확인해 봤지요.
다 아는 이름들이더라고요.
그 이름만 적어볼게요.
댓글목록
안희국님의 댓글
안희국 작성일어찌 집사님만 오금이 저리겠어요... 하나님 앞에서 저또한 말씀의 찔림으로 가슴떨릴때가 많이 있어요. 그래도 집사님은 어린아이같은 심정으로 교회홈피에 솔직한 심정을 올려놓고 고백도 회개도 하시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것 같습니다. 주일에 서로 불쌍히 여기라는 말씀이 마음에 깊이 와 닿았어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무슨 자랑할 거시라 있겠을까요.... 주의 크신 은혜로 품고 용서하고 사랑만 하는 것이 가장 마땅한 일일줄 믿습니다.....
기원섭님의 댓글
기원섭 작성일
본 글의 뒤로 이어지는 글이 있었는데, 지금 보니 그 부분이 빠져 있네요.
그 부분을 여기 아래에 보탭니다.
이랬어요.
장성수, 송용섭, Seongu Gil, 권오헌, Chals Kim, 김경호
빤히 알만 하시잖아요.
알고 봤더니, 박선동 그 분은 우리 교회 집사님이셨어요.
당연히 친구요청을 받아들였지요.
그 과정에서 박 집사님의 모습도 사진으로 확인하게 되었는데요, 바로 그 사진이 저를 깜짝 놀라게 한 거예요.
‘하나님 앞에서’라는 글과 ‘CORAM DEO’라는 글이 크게 새겨진 비석 앞에 서있는 모습이었기 때문이지요.
전날에는 권 목사님의 설교로 ‘코람데오’ 그 뜻을 알게 됐고, 이날은 불현듯이 제게 가까이 다가온 박 집사님으로 인해 또 그 뜻을 알게 되었으니, 이 어찌 인연이냐는 거예요.
희한하잖아요.
그렇게 인연이 엮어지는 순간에, 저는 섬뜩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어요.
하나님께서 저를 지켜보고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 말이에요.
권사님!
그렇지요?
맞지요?
권사님!
제 이 고백, 소문내지 마세요.
부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