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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교회, 순종과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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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기원섭 작성일18-01-16 10:42 조회1,25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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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민교회, 순종과 응답
나는 교회를 다닌다.
내 다니는 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서울시민교회다.
천호대로 군자교에서 천호동쪽으로 가다보면, 언덕길 막바지의 어린이대공원 후문 조금 못 미쳐서, 오른쪽 길가로 우뚝 솟은 붉은 벽돌 건물이, 바로 우리 교회 본당이다.
서울시 광진구 천호대로 622(능동)가 우리 교회 주소이며, 전철 5호선 5번 출구로 나와서 그 방향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우리 교회 본당으로 쉽게 찾아 들어설 수 있다.
내가 이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것은, 올 나이 서른여덟의 막내가 태어났을 때의 일이었다.
당시 경기 안양 석수동의 13평짜리 주공아파트에 살 때였는데, 막내가 태어나면서 거주 공간이 좀 좁다 싶은데다가, 두 아이 키우기가 버거워진 아내를 돕는다는 생각에서, 처가가 있는 서울 구의동의 25평짜리 단독주택으로 주거지를 옮기면서, 6.25전쟁 때 월남하신 장인 장모님을 따라 다닌 교회가 바로 우리 서울시민교회였다.
내 솔직히 고백해서, 울 엄마 뱃속에서부터 교회를 다녔다는 ‘모태신앙’이라고 하고, 또 ‘집사’라는 직분까지 얻었으면서도, 교회 일에 충실하지도 않았고, 빠질 때도 숱했다.
세상사 인간사에 푹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해서도 그랬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귀 기울이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그 모두가 건성이었고 가증스러웠던 내 모습이다.
그러나 근래 들어서는 솔깃솔깃 말씀에 귀를 기울여가고 있다.
성경 구약신약 전부를 한 번 필사하는 과정에서 나름의 깨우침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9년 전부터 우리교회 담임을 맡고 계시는 권오헌 목사님의 설교가 내 가슴에 늘 깊은 감동으로 담겨 들어서다.
지난 주일인 2018년 1월 14일 예배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랬다.
평소 주일에는 우리 순 순장이신 안희국 권사님에게 눈도장이라도 찍히려고 안 권사님이 임마누엘 찬양대에서 찬양을 하시는 2부 예배를 드리고는 했었는데, 이번에는 그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오전 11시 30분부터 시작된 3부 예배를 드렸다.
바로 전날에, 내 사랑하는 아홉 살짜리 손녀가 모처럼 저 아비와 함께 서초동 우리 집에 와서 하룻밤을 지냈었는데, 얼마나 곤히 밤잠이 들었는지 늦은 아침까지 깨지 않는 바람에, 손녀의 그 곤한 잠을 차마 깨우지를 못해서, 2부 예배를 건너 띄게 된 것이었다.
그래도 그 덕분에 거의 전 교인들이 모여 드리는 큰 예배에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내겐 또 하나의 큰 은혜로움이었다.
권 목사님은 이날 예배에서 성경 신약 누가복음 3장 1절로부터 38절까지의 구절을 바탕으로 한 ‘순종과 응답’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하셨다.
다음은 그 구절 전문이다.
1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2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3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4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5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6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7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9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0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11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12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13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14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15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7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18 또 그밖에 여러 가지로 권하여 백성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였으나 19 분봉 왕 헤롯은 그의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과 또 자기가 행한 모든 악한 일로 말미암아 요한에게 책망을 받고 20 그 위에 한 가지 악을 더하여 요한을 옥에 가두니라 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23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 24 그 위는 맛닷이요 그 위는 레위요 그 위는 멜기요 그 위는 얀나요 그 위는 요셉이요 25 그 위는 맛다디아요 그 위는 아모스요 그 위는 나훔이요 그 위는 에슬리요 그 위는 낙개요 26 그 위는 마앗이요 그 위는 맛다디아요 그 위는 서머인이요 그 위는 요섹이요 그 위는 요다요 27 그 위는 요아난이요 그 위는 레사요 그 위는 스룹바벨이요 그 위는 스알디엘이요 그 위는 네리요 28 그 위는 멜기요 그 위는 앗디요 그 위는 고삼이요 그 위는 엘마담이요 그 위는 에르요 29 그 위는 예수요 그 위는 엘리에서요 그 위는 요림이요 그 위는 맛닷이요 그 위는 레위요 30 그 위는 시므온이요 그 위는 유다요 그 위는 요셉이요 그 위는 요남이요 그 위는 엘리아김이요 31 그 위는 멜레아요 그 위는 멘나요 그 위는 맛다다요 그 위는 나단이요 그 위는 다윗이요 32 그 위는 이새요 그 위는 오벳이요 그 위는 보아스요 그 위는 살몬이요 그 위는 나손이요 33 그 위는 아미나답이요 그 위는 아니요 그 위는 헤스론이요 그 위는 베레스요 그 위는 유다요 34 그 위는 야곱이요 그 위는 이삭이요 그 위는 아브라함이요 그 위는 데라요 그 위는 나홀이요 35 그 위는 스룩이요 그 위는 르우요 그 위는 벨렉이요 그 위는 헤버요 그 위는 살라요 36 그 위는 가이난이요 그 위는 아박삿이요 그 위는 셈이요 그 위는 노아요 그 위는 레멕이요 37 그 위는 므두셀라요 그 위는 에녹이요 그 위는 야렛이요 그 위는 마할랄렐이요 그 위는 가이난이요 38 그 위는 에노스요 그 위는 셋이요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에 순종한 요한의 행적과 기도에 응답받은 예수님의 행적에 대한 이야기가 이날 권 목사님 설교의 핵심이었다.
그 성경구절 중에서도, 나는 10절과 11절 그 두 구절에서 특히 더 부끄러운 양심이 되고 말았다.
그 구절, 곧 이랬다.
‘10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11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옷 두 벌이 있어도 먹을 것이 있어도, 옷 없는 자와 먹을 것이 없는 자에게 나눠 준 적이 없을 뿐만이 아니라, 도리어 옷 한 벌 더 구하려고 또 먹을 것 더 가지려고 애썼던 내 지난날 탐욕의 삶을 돌이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말하자면 내 잣대로만 살아온 세상사였고 인간사였다.
권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 내내, 나는 또 우리 교회 표어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 표어, 곧 이랬다.
‘오직 말씀과 기도로’
권 목사님의 이날 설교 제목이, 그 표어와 연관된 것 같아서였다.
즉, 말씀에 순종하면, 기도에 응답받는다는 그 연관이었다.